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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1.22][비닥 디자이너 포럼]을 준비하며


Subject: 비닥 디자이너 포럼을 준비하며
Date: Tue, 18 Jan 2000 03:56:39 +0000
From: "권혁수"
Organization: viaLus@shinbiro.com
To: getto@chollian.net, ssahn@wow.hongik.ac.kr, alt-c@alt-c.co.kr,
chungde@chollian.net, jdkim@wow.hongik.ac.kr

Vidak Designer Forum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늘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땅에 디자인은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없다. 또는 디자이너는 있다.
그러나 디자인이 없다.
무슨 말장난인가 하겠지만 이런 수사적 표현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규정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한국 디자인의 현주소에 대한 뚜렷한 자기 정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정의가 지닌 진위의 문제를 떠나서‘이것이 한국의 디자인이다’거나
‘이것이 오늘 한국 디자인의 문제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불투명한
장르 인식에 대한 푸념이었다. 사적인 자리에선 누구나 이야기 했을 법한 이
간단한 지시적 언술행위가 왜 불가능했던 것일까?

왜?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우리가 역사를 말하려는 자리에 늘 선배가 있었고, 전망을 말하는 자리에 늘
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는 역사 이전의 역사 그 자체였고, 제자는 늘 전망의 징표로 우리들의
어깨에 견장처럼, 가슴에 훈장처럼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배를 이야기했거나, 제자를 이야기 했을 뿐, 디자이너와 디자인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현주소는 그야말로 현재의 처소를 알리는 지극히 보편적인 사실이다.
그 앞에 본적이나 원적도 있고, 그 다음 칸에 앞으로 이전할 또 다른
주소란이 비어 있다.
더구나 그 주소지의 거주기간과 기타 특기사항을 기록할 비고란도 있다.
이러한 주변적인 여러가지 정황을 전제하면서 오늘 우리는 한국 시각
디자인의 현주소를 기재하려 한다.

현주소는 적어도 오늘 우리가 서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아니면 그가 어떤
현실적 조건속에 놓여 있는가를 가늠하는 최소한의 정보다.그래서 그
시간적, 공간적 환경을 통해 지금 그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를
추론하거나 연상하는 계기를 마련한다.아니면, 극단적으로 그가 가서는
안되는, 오지 말았어야 할 길목과 광장을 이야기하면서 그에게 관심을 갖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오늘 우리는 한국 시각디자인의 작은 역사를 위한 계기와 기회를 계획한다.
이 땅에 디자인과 디자이너가 있다. 있는데, 어떻게 무엇으로 존재하는 가를
말하는, 담론의 좌표를 세우려는 것이다.
좌표는 두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장르 역사의 전환적 계기를
유념하면서 디자이너의 삶과 작품을 읽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계기를
둘러 싼 논쟁적 차원의 주제를 쓰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는 지나간 시대의 추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 내일의
관계를 살피는 인식적 차원의 역사이다.
좌표상의 구체적인 위치 표시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관심은 그 지점을
관통하는 축과 정렬에 있다.

우리는 이제 이렇게 이야기한다.

3월 - 아트디렉션 시대의 개막과 크리에이터의 출현, 이상철
4월 - 시각 디자인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행동과 전략, 박명천
5월 - 한국성의 조형적 현주소 그 허상과 실체, 김상락
6월 - 디지털 시대의 출판, 디자인 행동주의자의 꿈, 이나미
9월 - 그래픽 조형의 문법과 편집행위의 디자인, 정병규
11월 - 커뮤니케이션의 시각적 일상, 또는 대화방식의 유희성, 현태준

그리고 해를 넘겨,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할 것이다.
현주소는 늘 비어있을 것이다.

2000. 1.18. 권혁수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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