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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비닥디자이너포럼-김진평] 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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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제를 넘나든 한글 글자 표현의 선구자, 김진평

1. 근본의 중요성을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준 선배
김진평의 연구 태도와 방향은 늘 선배였고, 선생님다웠다. 학생들에게 통하는 그의 별명이
'바른 생활' 이었던 것처럼 그의 작품과 연구도 늘 '바른 생활' 그 자체였다. 그는 한결같이
기초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앞장서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모범을 보였다.
한글꼴의 변천사에 대한 연구와 전통적인 옛 활자꼴의 발굴과 분석 등을 통해서 전통적인
미감을 되찾고자 하였으며, 또한 현행 한글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글자너비에 대한
연구와 글자사이 조절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근본에 대한 탐구 태도는 이미 그의 석사학위 논문(한글 로고타입의 기초적 조형요
소에 관한 연구, 1974년)에서 잘 드러나 있다. 『훈민정음』의 기원과 제자 원리를 분석하
고 있으며, 한글꼴의 역사를 살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후 25년 동안 그의 연구 태도와
방향은 줄기차게 '기초 다지기'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었다.



2. 교수법은 서구 지향적이나 내용은 근본을 강조하는 개혁적인 선비
김진평의 레터링 교수법의 핵심은 역시 '기본 중시' 에 있었다. 그러나 예비 과정인 도형연
습 이후 본격적인 레터링의 첫 번째 과제가 퓨투라(Futura)체와 올드 로만(Old roman)체,
가라몬드(Garamond)체의 이해였다는 것은 나의 기준으로는 그분답지가 않았다.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아직도 그의 방식에 동의가 안 간다. 그러나, 언젠가 타이포그라피 전문 잡지
'정글'에서 시각 디자인을 지망하는 후학들에게 추천하는 책으로 『훈민정음』을 강조해서
권하는 것을 보고 역시 '그분은 그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3. 레터링 교육의 새 시대를 연 『한글의 글자 표현』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의 저서 『한글의 글자 표현』(1983년)은 우리 나라 레터링 교육
과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이 책의
판매 부수가 현재 1만 8천 권 이상이라는 점과 지금도 한글 타이포그래피 관련 논문에서 빈
번하게 인용되는 것으로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하여 글자표현의 세
계와 방향을 알기 쉽게 안내하고 있으며, 글자 개성의 표현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
다. 이 책은 체계적인 디자인 교육에 목말라하던 당시, 한글 레터링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에겐 직접 배우지 않았지만, 멀리에서도 따르고 존경하는 제자와 후
배들이 많았다. 그들이 바로 오늘의 한글타이포그래피 분야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오늘의 한
국 시각문화를 생산하고 있다.



4. 서구적인 레터링 기법을 한글에 어울리도록 정착시킨 대표자
김진평의 작업은 평소에 그가 강조해온 바와 같이 기본에 충실하고 완성도가 높다. 또한 감
칠맛 나는 잔재미가 있고, 군더더기 없는 전형적인 서울 맛이 난다. 주로 그의 작업 대상은
한글로 대표되는 작품들이지만 간간이 '허브 루발린'적인 뉴욕 냄새가 풍긴다. 이것은 아마
도 그가 '리더스다이제스트'의 디자인 디렉터 과정을 거쳤다는 점과, 그의 작업 대상들에 '한
국존슨즈' 니 '네스카페' 또는 '아르누보' 등의 외래어 이름이 많았었다는 것과도 무관치 않
을 것이다. 김진평과 '리더스다이제스트'...이것은 디자이너와 디자인 대상의 절묘한 어울림이다.



5. 한글 이름글자를 미학적 가치의 대상으로 격상시킨 숨은 공로자
그의 작품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단계적으로 발전시킨 흔적이 뚜렷하다. 어느 하나 즉흥적
인 것이 없고, 담금질의 연속이다. 그래서 더욱 그의 로고타입은 감상의 가치가 있다. 그의
대표작들은 이미 로고타입의 기본 기능을 뛰어넘었다. 한글 로고타입의 위치를 제품이나 회
사의 이름 그 이상의 미학적 감상의 대상으로 끌어올리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



6. 정직한 디자이너
그가 다룬 중심 재료가 글자였다는 것도 그 이유겠지만, 그의 작품엔 '정직함'이 보인다. 이
'정직함'이 바로 그의 고유성을 만들고 창의성을 낳는 힘의 원천이 아닐까?


한재준(서울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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